![]() | 1941년 8월 18일 싱가포르 출생. 2025년 6월 25일 별세. 채란의 아버지 채문현(蔡文玄)은 남양(南洋) 지역에 거주하던 시절 소일부(邵逸夫)를 알게 되었고, 그의 영화 배급 및 홍보 업무를 도왔다. 이 인연은 훗날 채란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채란은 18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대학 예술학부 영화과 연출 전공에 입학했으며, 동시에 소일부의 발탁으로 학업과 병행하는 형태로 쇼브라더스(邵氏) 일본 주재 지사장 겸 통역으로 일하며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1963년, 채란은 홍콩에 정착하여 쇼브라더스에 입사하였다. 일본에서 구축한 인맥을 바탕으로 쇼브라더스의 일본 시장 개척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인재와 제작 기술을 도입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2년, 채란은 쇼브라더스를 떠나 세기 영화사(世紀影業有限公司)에서 전무이사로 일하다가 이후에는 가화 영화사(嘉禾電影)로 자리를 옮겨 제작부 부총재를 역임했다. 가화 영화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채란은 주로 허관창(何冠昌)을 도왔으며, 1980~90년대에는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 기획했다.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은 성룡(成龍)의 영화들로, 대표적으로는 '쾌찬차'(快餐車, 1984), '용적심'(龍的心, 1985), '용형호제'(龍兄虎弟, 1987), '중안조'(重案組, 1993), '벽력화'(霹靂火, 1995), '일개호인'(一個好人, 1997) 등이 있다. 그외 1980년대부터 음식과 여행기에 관한 많은 글을 썼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도 활동하였다. ▶ 사망 기사 : '홍콩 식신' 세계적 음식 평론가 차이란 별세 |